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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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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망하겠소
2019.10.24 조회수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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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의병의 개념을 터득하기 위해서 의병의 殺身報國의 투철한 義理精神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仁同 선비 張鳳翰이 全羅左義兵將 任啓英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군사를 의병이라고 이름한 것이 어찌 우연함이리오. 그 충성과 용맹이 다른 관군에 견줄 것이 아니오. 그 義氣의 분발함이 또한 중들의 類가 아닙니다. 의로운 소리와 높은 절개가 확연히 늠늠하여 창졸의 사이에 계책을 결단하고 위태롭고 망하는 즈음에 몸을 일어서 기회에 임하여 싸우는 것이 오직 義일 뿐이요,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한 것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의병의 앞에는) 강한 적도 강함이 되지 못하고 많은 적들도 많은 것이 되지 못하여 부딪치면 부서지고 범하 면 타버려서 그 형세가 마른 가지나 씩은 가지를 꺾는 것과 같이 쉬운 것입니다.7)


라 한 것을 보면, 의병이란 ‘義로써 뭉쳐진 군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의병은 적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의를 위해 싸워야겠다는 투철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군인이 진정한 의미의 의병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의를 위해 生死를 초월하여 殺身成仁하는 것이 의병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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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영남 3대 의병장으로 꼽힐 만큼 맹활약했던 김면은 병약한 몸으로 전장을 누비다가 병들어 쓰러지고 말았어. 그의 유언은 사뭇 비장해.


“나라가 있는 줄 알았지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도다(只知有國 不知有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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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11.   만민공동회

 

“12살 먹은 아이가 공동회에서 연설을 하다가 우리나라 망하겠소 말 한마디에 그 아이도 울고 사방에 듣던 이들도 다 통곡도 하며 눈물도 흘리었소.”

– 매일신문 1898. 11. 8.

 

“고등재판소 문앞에 모인 만민이 어제 찬 비를 무릅쓰고 의관이 다 빗물에 젖어버리며 찬 기운이 뼈에 사무치되 조금도 변동들 아니하고 빗속에 모혀 있었다더라.”


“시골 사는 콩나물 장사 하는 늙은 여인이 콩나물을 가지고 서울 와서 팔았는데 그 여인도 또한 만민의 충애하는 목적을 흠모하여 콩나물 값으로 보조금을 냈다더라.”


– 독립신문 1898. 11. 9.

 


“법부대신 한규설씨가 회중에 와서 말하되 (…) 협회원들이 풍찬노숙함이 걱정스럽거니와 관민간에 정을 통하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가를 어찌 보존할꼬 하며 눈물을 흘리거늘 모든 협회원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더라.”


“다동 사는 박소사가 집을 팔아 만든 삼백원 중 이백원을 보조금으로 냈고, 심지어 어떤 거지는 하루동안 구걸한 돈 1원을 보조금으로 냈더라. 청나라 상인이 충애의 목적은 다 마찬가지라 하며 4원을 냈고, 어떤 나무장수는 긴 장작 10개를 보내어 밤을 새는 회원들이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했으며, 과일장수는 회원들의 갈증을 해소하라며 감과 배 3석을 보냈더라.


– 황성신문 1898. 11. 11.

 


“남서 미동 사는 9세 아이가 만민공동회에 와서 말하되, 회원분들께서 충군애국하는 목적으로 비바람을 피하지 않으시고 풍찬노숙하심이 제가 보기에도 안심치 못한 중, 부친께서 2원 5전을 주신 것이 있는 고로 비록 약소하나 요긴하게 쓰심을 바라나이다 한즉 보던 이들이 신동이라 칭찬하였더라.”

– 황성신문 1898. 11. 14.

 

 

 


 “ 배고픔도 참을 수 있고, 어떠한 굴욕도 참을 수 있는데,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 ”

 


[ ...... 가장 큰 공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나아가 군을 육성·발전시켜 .......


  ......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 .......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0억 달러 경제원조, 70만 군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아 .........     ]

 

그때 그 이야기    
 
 
<961> 老兵이 걸어온 길-211-위대한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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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창설식 참석 등 군 사랑 각별


해방 후 귀국한 그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구성해 정부 수립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지(Hodge) 중장과 불화로 한때 미국에 잠시 가기도 했으나, 유엔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케 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혼란기를 비교적 무난히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2년간 대통령으로 집권하는 동안 그의 가장 큰 공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나아가 군을 육성·발전시켜 대한민국을 오늘날과 같은 국가가 되게끔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늘 우리에게 “배고픔도 참을 수 있고, 어떠한 굴욕도 참을 수 있는데,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고 역설하면서 “우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국민의 대동단결을 강조했던 애국자였다.


그는 군에 대해서는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깊은 관심과 애틋한 감정을 갖고 대했다. 그 때문에 군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서울대학교 졸업식에는 못 가더라도 사단급 이상 부대 창설식에는 반드시 참석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혹자는 이 대통령이 군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시 민병대(militia)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아울러 이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또 그는 미국 남북전쟁에 대해서도 제3자가 들으면 탄복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장군이 이 대통령의 깊은 학문적 지식에 대해 자신보다 미국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했을까!


6·25전쟁 때 나와 우리 군은 이와 같이 뛰어난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대통령을 모시고 전쟁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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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총장이 되고 나서는 수시로 전선 상황을 비롯해 군 현안을 보고하러 나는 경무대로 이 대통령을 예방했다. 전쟁 중 이 대통령은 휴전에는 적극 반대하면서 오로지 북진통일만을 추구했다.


특히 휴전의 막다른 길목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로버트슨을 상대로 18일간의 협상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0억 달러 경제원조, 70만 군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아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명한 대통령이었다.


http://kookbang.dema.mil.kr/kdd/ColumnTypeView.jsp?writeDate=20090603&writeDateChk=20090525&menuCd=2001&menuSeq=16&kindSeq=1&menuCnt=30917

 

 

 


[ ......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

 


[시사다반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영웅' 유관순 열사 다시 생각하기 


오피니언 | 강만금 기자 | 2015년 03월 02일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영화배우 김윤진 씨가 함께 제96주년 삼일절을 맞아 새로운 영상을 공개했다. 바로 ‘한국인이 알아야 할 영웅’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열여덟 살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영상이다. 7분이 조금 못 되는 영상은 3∙1운동의 의미와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말하고 있다. 국내외 홍보를 위해 영상은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당시 이화여자보통학교의 학생이었다. 학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나와 고향인 충남 병천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만세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아우내장터에 운집한 3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선두에서 만세를 외쳤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일제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고 현장에서 잡힌 유관순 열사는 공주감옥으로 송치되어 3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모진 고문에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여 출소를 이틀 앞둔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하고 만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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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 ..... 무너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맏형이 입대하였다.

        나 역시 .......     ]

 

[공병호의 독서산책]  한준식 ‘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2019-06-02
 

스무 살 청년이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두고 “반칙과 특권의 시대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평자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나라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감동과 눈물 그리고 노고로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볼수록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정말 기적이었다”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한준식의 ‘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는 이 땅에서 태어난 평범한 한 청년이 겪었던 6·25전쟁 체험담이다. 구체적으로 1951년 입대 직후부터 1953년 육군 보병학교로 차출되기까지의 치열한 전투의 나날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 체험담 속에서 독자들은 이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깊은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조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31년생으로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저자는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북한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자에게 서훈이 주어지는 시대에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이렇게 증언한다. “그들이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인해, 해방 이후 아직 안팎으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는 너무나 큰 고난과 마주한다. 내 나이 고작 스무 살 때였다.”


형이 입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도 군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왜 그렇게 위험한 결정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스무 살 청년의 기억은 이렇다. “무너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맏형이 입대하였다. 나 역시 형과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같은 해 8월 24일 입대하게 된다.”


이런 민초들의 힘으로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험난한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노년에 이 땅에서 전개되는 일들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나이가 든 분들의 노파심이라 간주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주는 지혜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평화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보니, 사람들 모두 전쟁의 공포에 무뎌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휴전상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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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today.co.kr/news/view/1762113

 

 

 


[ .......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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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 기업가들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애국심과 공인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사업을 통해서 국가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강하다.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이러한 특징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식민지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자 최초의 제약회사인 동화약방의 사시는 ‘우리 민족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것이며 회사 이름 ‘동화(同和)’는 ‘민족이 합심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기업가들은 독립운동에 지원을 했지만, 그것이 어렵게 되자, 기업을 일으켜서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겠다는 사업보국의 신념을 가지고 기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를 설립한 오치은, 경성방직의 김연수,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강원산업의 박흥식 등이 그러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호암전집』에 의하면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등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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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일생 벌어놓은 것을 다 투입하고 망하더라도  ......

  ..... 내가 놓은 디딤돌을 밟고 후대의 누군가가 성공하면  ...........    ]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


"내가 망해도 꼭 해야 할 일…후대 디딤돌 된다면 보람"

 

2015-11-24


다시 보는 아산의 경영철학

결국 성공시킨 차 독자개발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호 峨山·아산)이 타계했을 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誌)는 ‘아산은 많은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 평가대로 아산은 대부분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역사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한국은 연간 45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이다. 하지만 아산이 자동차사업을 시작한 1968년만 해도 국내에 등록한 자동차가 3만여대에 불과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산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산은 ‘자동차 독자 개발’을 선언했다. 미국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동원해 아산을 말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립 경영’을 관철했다.


아산은 “자동차산업이 없으면 진정한 산업화를 할 수 없다. 내 일생 벌어놓은 것을 다 투입하고 망하더라도 꼭 해야 한다. 내가 놓은 디딤돌을 밟고 후대의 누군가가 성공하면 나는 그것을 보람으로 삼겠다”고 주위를 설득했다. 아산의 자동차 독자 개발은 농업 중심이던 한국의 산업구조를 공업으로 바꿔 오늘날 제조업 강국이 되는 씨앗이 됐다.

 

건설업에 토대를 둔 아산은 공기(工期) 단축, 즉 ‘일의 속도’에 경영의 중점을 뒀다. 그는 이익을 남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공사나 생산 일정을 단축하는 것이야말로 이익을 창출하는 길이라 믿었다. 그것이 아산의 ‘속도 경영’이었다.

 

1968년 3월 첫 삽을 떠서 2년여 만인 1970년 6월 마무리지은 경부고속도로는 아산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조선소를 지으면서 선박을 동시에 건조한다는 발상을 통해 1972년 3월 조선소 착공, 1974년 6월 조선소 완공과 동시에 유조선 2척을 건조하는, 세계 조선사에 유례없는 기록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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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2469351

 

 

 

    [ .....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   ]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사

            1963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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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는 피땀 어린 노력의 지불 없는 진보와 번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격동하는 시대, 전환의 시점에 서서, 치욕과 후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오늘의 세대에 생존하는 우리들의,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한, 내 조국, 내 민족의 역사를 뒤덮은 퇴영의 먹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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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5cwd.pa.go.kr/korean/data/expresident/pjh/speech.html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조인스] 기사입력 2015.02.26 

[J플러스]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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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역사적인 결단을 해야 할 순간에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을 하거나 휘호를 써서 본인의 각오와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경우가 있었다. 이 단문(短文) 속에는 목숨을 걸고 거사를 결행한 한 혁명가의 굳은 결의와 그가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의 비장함이 함축되어 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을 박정희 대통령만큼 당당하게 말한 지도자가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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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196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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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주인공이 자식들을 잘 키우고 과거를 아름답게 회고할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은 李承晩(이승만) 세대, 朴正熙(박정희) 세대이다. 이 위대한 세대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중화학공업, 대기업, 중산층, 마이 카, 아파트, 민주와 복지 제도를 70년 만에 건설하는 데 그래도 최소한의 人命희생은 있었다.

  
  주인공의 선배 세대는, 가난과 亡國(망국)과 戰亂(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 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한)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썩은 강물 같은 세상을 삼켜 바다 같은 새로운 세상을 빚어낸 사람들이다. 이 세대의 旗手(기수) 박정희가 가슴 관통상을 당하고도 "난 괜찮아"라고 내뱉었던 것은, '허름한 시계를 차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屍身(시신)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세대였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온갖 인간적 비극을 당하고도 의연히 버티면서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잘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희생한 이 세대의 치명적 실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아 자녀들이 풍요를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이 근사한 나라가 공짜로 생긴 존재로 알도록 방치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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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가 본 '국제시장'-좀 미안한 이야기

 조갑제
2014-12-29
 https://pub.chosun.com/client/news/print.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4121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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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 ...... 전쟁이 나면 국가 위해 싸우겠느냐 ........

 

  ...... 싸우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2% 중국 14.4% 일본 4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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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친북의식화교육을 한 결과 2002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6.25를 한국의 북침이라고 답한 사람은 31% 였다. 2004년 9월 조사에서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 39%로 북한이 33% 였다. 2004년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이 주적이라는 응답이 육사 입시생 34% 논산훈련소 입소생 75%였다. 2005년 16~25세를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서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2006년 한중일 중고 2학년생과 대학생 등 2939명 의식 조사결과 전쟁이 나면 국가 위해 싸우겠느냐는 질문에 싸우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2% 중국 14.4% 일본 41.1%로 나타났다. 자기 나라에 전쟁이 나면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출국하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4% 중국 2.3% 일본 1.7%로 나타났다. 2009년 설문조사에서는 전쟁나면 외국으로 피신하겠다는 응답자가 무려 33%가 나왔다.

 

2007년 국방부가 실시한 입대장병 면접 의식조사 결과 “우리 주적은 미국”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다” “북의 남침 가능성이 없으니 남한 군대는 필요 없다”와 같은 대답들이 나왔다. 한 의식조사위원은 “입대 장병 80% 정도가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했다.


2008년 9월 공군사관학교 4학년생도가 “''F-15K는 살인기계인데 이것을 사용할 군인인 것이 괴롭다”며 반군·좌익 성향을 드러내 퇴교 되었다.


2008년에는 여간첩 원정화가 군부대 안보강연을 52회나 하고 돌아다녔다. 영관급 정훈장교들은 그녀에게 포섭돼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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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北 연평도 포격도발이 전교조 친북교육 박살냈다

written by. 이계성

 

 

 

 


          2005.8.


신세대 66% "미국·북한 전쟁시 북 편들 것"

‘북한 좋다’도 63%... <조선> 설문조사 결과

 

    이승훈(youngleft) 기자    
 
 

우리 나라 신세대들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신세대 민족주의에 관한 조사에서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는 질문에 ‘북한편에 서야 한다’고 답한 신세대가 65.9%에 달했다.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대답은 28.1%, 모름·무응답은 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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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신세대는 ‘좋다’ 62.9%, ‘싫다’ 33.7%였고 ‘모름·무응답’은 3.4%였다. 기성세대는 ‘좋다’가 16%에 불과했지만 '싫다’가 55%나 돼 대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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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1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4506

 

 

 

 


[사설] 육사생도들까지 오염시킨 좌파 선전선동

 

 조선일보 

 2008.04.04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2004년 1월 육사에 합격한 가(假)입교생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고 숨이 막혔다고 한다.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에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답한 것이다. "북한"이라고 답한 육사생도는 33%였다고 한다. 육사는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고, 이들은 졸업과 함께 대부분이 휴전선을 지키는 군부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하게 된다.


 같은 해 국방부가 실시한 입대장병 의식조사 결과 75%가 반미 감정을 드러냈고 공산주의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답한 장병은 36%에 불과했다고 한다. 숨이 막히는 게 아니라 나라가 망할 조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엔 반미(反美)하고 친북(親北)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반미와 친북의 불을 지른 것은 지난 10년 간의 두 정권이었다. 금성출판사가 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보고 그 좌파 성향에 놀란 김 교장이 자체적으로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군에 배포하지 못하게 막은 게 다른 사람 아닌 국방장관이었다.

 

공영 TV들은 경쟁적으로 여기에 풀무질을 해댔고, 전교조는 어린 학생들을 그 불더미 속으로 밀어 넣어 건강한 상식을 태워버렸다. 2004년의 육사 신입 생도들은 주로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중동의 산업 역군과 같은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에 대해선 학교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2002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6·25를 북한의 남침이라고 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2004년 9월 조사에서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39%)이라고 한 사람이 북한(33%)이란 응답보다 더 많았다. 김 교장을 놀라게 한 육사생도들은 그해 입교한 학생들이다. 그나마 육사를 지망한 학생들이었기에 그 정도였지 일반 대학 신입생은 상황이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2005년 16~25세를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대학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2006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면접시험에서 "우리 주적은 미국"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다" "북의 남침 가능성이 없으니 남한 군대는 필요 없다"와 같은 대답들이 나왔다. 한 심사위원은 "응시생의 80% 정도가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권과 TV, 전교조가 국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까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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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1450.html

 

 

 

 


         2007   노무현

 

[ ......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     ]

 

[ .....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   ]


[ .....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

  ..... 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      ]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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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시는데...영국의 토니 블레어의 말하자면 자문을 하는...그 양반 이름이 누구지..예, 기든스라는 사람의 책을 보니까 영국이 미국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좀 자주적으로 가라..그리고 유럽을 중시하라.. 이렇게 조언을 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은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지금까지는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제로 자주란 말씀을 자주 하진 않으셨지마는 6.15 회담부터 자주적인 행보...일부입니다. 그 때...

 

김정일 :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라는 구호가 나오지 않았소?


대통령 : 그랬습니다. 그분 뭐 핵무기도 만들려고 하셨고...했는데...

김정일 : 자조...자조지요 뭐..자조..

 

대통령 : 근데 그것으로 말하자면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그래서 이제..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균형외교라는 말을 우리 정부에서 와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 공공연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 공식 균형외교라는 말을 쓰고 있죠...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 또 이런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후보 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 가 있냐.. 인계 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디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 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 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 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 달러가 들어도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냈지 않았습니까... 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 합의했지 않았습니까..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우리는 전쟁사실 자체를..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어제 엊그제 국군의 날 행사 때 우리 국군의.. 우리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일관되게 여러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했고..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뭐 내가 결의가 단호해서 그렇거나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남쪽의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로서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가는 기운은 강력하게 굳혀 나가는 것..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 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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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충분히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 드릴까요,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 마땅하게 생가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가지고 개입하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정치적 원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미운나라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한다든지 미국의 국내법만 가지고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는 과학기술의 일종인 기술적인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패권이라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나면 상호적인 관계로 변화를 형성하고?


군사적인 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 아프리카라할지라도 타격이라든지 일시적인 침략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시대로 간다고 보기 때문에 과거 제국주의 시대 같은 그런 침략과 지배, 이것을 자위력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도 그런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고 경제·시장규제를 가지고 정치적원력을 행사하는 것도 과연 어느 시기까지 갈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20년, 변화를 내다보면서 곧 한계에 봉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그와 같은 경제권력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나 개별기업들이 아직까지 국내법을 가지고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변해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한민족이 슬기롭게 서로 단결하고 또 자주의 문제도 시간을 갖고 서서히 풀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남측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숫자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니댜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을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남측에서는 이 변화라는 것도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로서 그런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의논을 드리고 싶고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풀어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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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수첩속 박근혜 “이명박 좌파척결 한 일 없어 나라 비정상”


김민기자     2017-05-05

 

박준우 前정무수석, 블랙리스트 공판서 증언… 특검은 업무메모 공개


‘재벌들이 종북에 줄을 서 사정 서둘러야…’ ‘강한 적개심 갖고 친북 척결…’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좌파와) 싸우자…’.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4)이 2013년 8월∼2014년 6월 청와대에 근무하며 회의 내용을 정리한 업무수첩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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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첩의 ‘2013년 9월 9일 실수비’라고 적힌 부분에는 ‘천안함 영화 메가박스 상영 문제, 종북 세력 지원 의도, 제작자 펀드 제공자: 용서 안 돼’ ‘이석기 사건이 스타트’ ‘각 분야의 종북·친북 척결 나서야’ ‘강한 적개심 갖고 대처’ 등의 문구가 기록됐다.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한 달이 좀 넘은 김 전 실장의 발언이라고 한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 전 수석은 “김 전 실장이 회의 때마다 ‘나라가 많이 좌편향돼 있다’는 언급을 자주 했다”며 “문화예술계에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정부를 비방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의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2013년 12월 19일 당 최고위원 송년 만찬’이라는 메모에는 ‘문화계 권력 되찾아야’ ‘MB 때 한 일 없어’라고 기재했다. 박 전 수석은 “만찬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을 기록한 것”이라며 “우파가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좌파 척결에 한 일이 없어 나라가 비정상이라며 개탄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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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는 전쟁 임하는 자세로’

 

김 전 실장이 역사 교과서 문제가 진영 간 이념 대결이며 수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정황도 수첩에 담겨 있다. ‘2013년 10월 2일’ 메모를 보면 ‘교과서는 이념 대결 문제’ ‘간단치 않다. 강력한 의지 있어야’ ‘역사는 국민의 혼-역사 왜곡은 혼을 오염시키는 것’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박 정권 5년 내 척결 곤란’ 등이 그것이다.


‘2014년 1월 8일’ 메모에는 ‘전교조의 악랄한 공격으로 좌절’ ‘애국 건전세력 기반 약화 결과’ ‘치밀하게 준비 안 하면 제2, 제3의 교학사’라고 기재됐다. 당시 우편향 및 부실 논란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좌파 진영의 반발로 철회한 상황을 두고 한 말로 보인다.

 

한편 이날 박 전 수석은 수첩 내용에 대한 진술을 인정하면서도 “김 전 실장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기울어지는 걸 바로잡자는 강한 결의를 보여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실수비에서 청와대 수석들 사이에서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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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70505/84213988/1#csidxd2f2af840ab63509e94da7738978e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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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2월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뿌리 뽑아 끝까지, 불도그보다 진돗개같이, 한번 물면 살점 떨어질 때까지”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나라 전체가 편향돼 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좌파 척결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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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70506/84226451/1#csidxc5d038c0deb7add9c973f71bad9803e

[토요기획]‘청와대 안주인’ 최순실, 대통령 침실 전등 교체까지 지시
권오혁기자 , 허동준기자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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